안수현이라는 의사가 있었다. 33살이라
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안수현 의사는 자신
을 돌보지 않고 오직 환자를 위한 희생적
인 삶을 살다 간 인물이다. 안수현 의사가
레지던트 시절인 2000년 6월, 의약분업
이 한창일 때 안수현 의사는 밥그릇보다
횐자의 생명을 우선시하여 파업에 동참
하지 않자 동료와 선배들의 따돌림과 방
해공작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
당하다 간 인물이었다.
내가 왠만하면 사람이나 인간으로 표현
을 하고 인간말종의 경우 ,작자,라고 사용
하지만 안의사 만큼은 그러한 표현으로
도 손색이 없을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
다. 2006년에 갔으므로 나보다는 동생이
니 ,그분,이라는 극존칭은 아니더라도 말
이다. 따라서 이제 그는 역사속 인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동료들이나 선배의사들은 파업
중에도 환자를 진료한 그를 왕따시키고
진료마저 방해해 생존 가능했던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한 의사들에게는 ,작자,라
는 표현조차 신사적일지도 모른다! 그 방
해라는건 안의사가 없을때 중환자실에
잠입하여 인공호홉기를 뗀 일이었다. 안
의사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도 깨닫지 못
한 동료의사들을 일컬어 눈과 귀가 막힌
자들이라고밖에 볼 순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누군 뭐 땅파먹고 장
사할줄 아슈?,,라는 말로 자신들의 입장
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도 헌신적인 삶을 살
다 간 참 의사들이 많았다. 문자적으로
도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왕의 지위
만큼이나 많은 것을 가졌어도 전부 내려
놓고 낮은 자세로 임했던 의사들도 예수
님의 정신으로 살아간 것이다. 장기려 박
사를 한국의 슈바이쩌라고 부른 것처럼
안수현 의사도 한국의 예수라 불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의사라는 직업이 고
소득 전문직이라해서 자의든 타의든 의
사를 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70~80 년
대 가요계를 평정한 ,송골매,의 보컬 구창
모 옹도 처음에 의사를 권유하던 모친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좌우지간 예전
의 의사와는 사뭇 달라진 느낌을 받는것
이 오늘날의 의사들 행보인것 같기때문
이기도 하다.
특히 드라마를 보면서 알 수있다. 일부내
용을 제외하면 대체로 의사집안의 배경
은 ,다이아수저,다. 대궐같은 가옥에 골
프도 치고 별장도 있다. 심지어 정계에 진
출하기도 한다. 실제로 20년 전 당시 내
가 거주하던 지역구에서 모 산부인과 의
사가 15대 총선에 여당후보로 출마하기
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병원
의 규모가 더욱 커졌음을 본다. 따라서 눈
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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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위치를 감당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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