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정관념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편
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편견에 해당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컨대 장애인
이라고 글을 쓸줄 모를것이라며 내용은
노벨문학상감인데 지은이가 장애인이라
는 이유만으로 당선을 취소하는 사례를
듣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저 사람은 가난뱅이이니깨롱
선뜻 찬조하지 못할것으로 생각하고 이
사람은 억만장자니까 통 크게 기부할 것
으로 착각할 수있다. 실제로 초라한 복장
의 부부가 한 대학교에 기부하기 위해 현
장에 방문하였으나 경비원은 그 부부의
차림이 동냥하러 온 줄 알고 그냥 돌려보
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부부는 억만장자
였고 기부를 위해 정작 자신들은 소박한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 대학교는 스텐포
드대였는데 그 부부의 외모만 보고 판단
한 결과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걷어
찬 셈이었다.
비슷한 사례가 신약성서에 등장한다. 흔
히 교회에서 ,과부와 두 렙돈,이라는 제목
으로 설교하기도 하는 그 내용은 이렇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억만장자들이 내놓
는 헌금에 대해서 통이 크다고 입을 모은
반면, 꽤죄죄한 차림의 한 여인이 몇푼 되
지 않은 돈을 봉헌하는걸 보면서 생각했
을 것이다. 당연히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
이다. 그런데 제 3 자의 입장에서 보면 억
만장자들이 넣은 돈은 일부이고 과부가 넣은 돈은 사실상 전 재산이었다. 그러한
면에서 가장 통 크게 기부한 사람은 가난
한 과부였던 셈이다.
과부의 삶에 대해서는 보충설명이 필요
없다. 물론 그 가정이 억만장자냐 하루 벌
어 먹고 사는 형편이냐에 따라 1950년대
와2000년대 서울풍경 차이일 것이다.
그 자녀들이 자라서 출세를 했다면 사정
은 달라질 수는 있겠다. 나의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도 모두 과부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나이대에 과부가 되셨다는 공통점
이 있다. 배우자가 모두 의료인이었고 스
무살에 결혼하신 것도 일치하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셨던 것 같다! 다른점은 외조
부는 6.25때 공산군들에게 고문 후유증
으로 소천했고 친조부는 해방 전 과로사
했다는 점이다.
좌우지간 인류가 살아온 그 자체가 기적
이라고 밖에 볼 수없었다. 30년 동안 과
일가게를 하면서 모은 재산 400억을 한
대학에 기부한 노부부의 기사를 접했다.
훈훈한 소식이 많지 않은 현대사회에서
드물게 들어 본 미담이었다. 그 노부부가
과일장사를 하면서 땅을 구입했는데 이
를 두고 ,,땅을 구입할 정도의 재산은 있
었나보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시 그 부부가 구입한 땅의 시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땅이 개발되고 과일을 팔면서
그만큼 재산이 늘었을 수 있었지만 이들
에게 400억은 전 재산이었다. 그것을 장
학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보람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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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난에도 넉넉히 베푼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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