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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를 섬긴 지주

by 조각몸매 이휴재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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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군 금산지역에 살던 조덕
삼은 구한말의 대지주였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효를 중시하는 유교집안에서 자
랐다. 그러던 어느날 여차저차해서 기독
교인이 되었다. 그의 집에는 마부로 근무
하는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
주 글 공부에 목말라하는 인물이었다.

훗날 영수가 된 조덕삼은 그런 이자익의
모습을 보고는 같이 성경공부를 하기 시
작했다. 조영수가 섬기던 교회는 엘 볼튼
선교사가 금산 대저택을 리모델링 하여
그 사랑채에서 시작한 교회로 마을명을
딴 금산교회로 출발하였다. 이자익의 쥬
인니으리께서는 그가 신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그러던 1905년 전북노회에서는 임직식
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덕삼은 영
수로 남았고 이자익 장로로 피택되었다.
지주인 조덕삼이 탈락하고 백저미다시피
였던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자 삽
시간에 유교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같은 시기 사대문안에 있던 연동교회는
양반그룹이 백정들과 자리를 따로 요구
하는 등 텃세가 심했다.

그런데 연동교회에서도 임직식에서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백정인 박성춘이 되는 이
이변이 일어난다. 이에 스응질이 난 양반
들은 자진 출교하여 그들만의 교회를 세
우게 된다. 이와 달리 조덕삼은 승복하여
이자익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내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장로는 나보다
더 신앙에 대한 열의가 좋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금산교회를 헌신적으
로 섬기면서 이자익은 목사가 되고 조덕
삼은 장로가 되었다. 조덕삼의 가문은 3
대가 장로가 되었는데 그의 손자는 대도
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지낸 조
세형 장로이다. 금산이리는 지명은 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금산이라고 인식하
기도 한다.

금산은 김제 외에도 충남 금산군이 있는
데 그만큼 우리나라 산지에는 금이 많다
고  판단할 수있다. 인류사회는 여전히 내
려놓는것에 인색하다고 할지라도 주어진
달란트를 어떻게 하면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갑질이 만연하는
사회 속에서도 조덕삼 장로와 같이 자신
의 위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
는 그래야 세인들의 존경과 멘토가 되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함만
은 아니어야 한다. 섬김은 곧 섬김으로 이
어지는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