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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성지가 청소년 통금 지역이 되다니!

by 조각몸매 이휴재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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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가 되면 외할머니
댁에 자주 놀러갔던 기억이 있다. 꼭 방학
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댁
을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가셨던 기억이 생
생하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사셨던 가옥
은 일반주택과는 다른 구조였다. 단독주
택이나 아파트라기보다 여관이라고 할 수 있었던 그곳은 외할머니께서 운영하
신 곳이었다.


여관 동네라고 할 만큼 여관이 즐비하였
는데 이로 인해 내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즈음에 여관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모시
게 되었다.

들려주신 사연에 의하면 그 여관은 외할
머니의 친부모님이 소유하셨던 건물이라
고 한다. 전쟁 때 저택이 파괴되고 친정
식구들이 사망한 뒤 여관건물을 임대받
아 그곳에서 40년 간 살아오셨다. 당시 외할머니는 세 자녀와 시댁식구들만 피
난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외
할머니는 불자가문에서 자랐던 남편을 전도하여 인천을 동방의 안디옥으로 만
들고자 하셨다고 한다. 인천 역시 지금은
북한땅이 된 평양을 제외하고는 우리나
라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가 전파된 지역
이었다. 1885년 부활절에 언더우드 선교
사가 입국한 곳이 제물포였다.

그렇다고 전쟁이 지역의 문화까지 바꿔
놓았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전남 신안
군에 증도라는 섬이 있다. 그 지역에는 문
준경이라는 전도사가 살았는데 그 역시 6.25때 점령군에 체포되었다. 그럼에도 그 지역의 약 80%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고 한다. 물론 사람들마다 심경에 따라 다
를 수있다. 복음의 성지였던 만큼 그곳이
다시금 복음의 서광이 비춰지기를 바란
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재건축되고 있
는데 기약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