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적받기를 싫어한다. 물론 사
람을 함부로 지적하는 것도 결코 옳지 않
다. 물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허물
은 무시한 채 타인의 허물을 들춰 그것을 크게 드러내려는 행위는 옳지 않다. 다만 대체로 자신이 알거나 롤모델 삼으려는 사람이 자신에게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
어 그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 하는 일이 서툴거나 실수가 잦으
면 분명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게 된다. 그
런 경우에 하사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참견 마!,,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말
만 듣지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성경에는 사람 말을 듣지 말라는 기록이 없다. 어쩌면 불신자보다 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불신자
라도 ,,과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다르구
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적을 받지 않으면 당사자도 자만과 착각에 빠질 수있다. 업무에 관한
서류도 혼자 하는것보다 디각도로 보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
다. 그런데도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다보
면 자신도 모르게 말을 잘라버리는 경향
이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인지 나이를 먹어도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 사람들은 열 살 전후면 철이
들었다. 그만큼 조숙해진다는 의미이기
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면에서 조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마음속은 여전히 어
린아이와도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
견할 수있다.
대인관계를 맺으면 지적과 충고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이 과정을 세밀히 분석
하고 차분하게 고쳐나가면 완벽한 나를 발견할 수있다. 노력해서 안 되는 부분은
이해를 시키는 것도 좋다.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왕이 잘못한 행위를 지적하면서 대조되는 두 왕의 사례를 본다.
설명이 필요없는 성군 다윗도 왕위에 있
을 때 치명적인 죄를 범한 바 있었다. 사
무엘상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윗이 왕궁 옥상에 올라가 경관을 비라보다 맞
은 편 건물 내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목격했다고 나온다. 이에 다윗은
그 여인을 왕궁으로 불러내 동침까지 하
게 된다.
하룻밤을 보낸 여인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은 여인의 남편이자 충신인 우리아
를 불러내 포상휴가라는 명목으로 아내
와 지내기를 명한다. 그러자 우리아는 전
방에 전투가 치열한데 자신만 휴가를 보
낼 수 없다며 다시 전선으로 향한다. 다급
하진 다윗은 전보를 보내 우리아 진영의
전략을 바꾸도록 했고 결국 우리아는 전
사하고 말았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넘어가는 듯 했지만 어느날 불쑥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왕궁
을 방문해서 다윗이 행한 일을 한 예화를
통해 지적해주는 모습을 볼 수있다. 그때
서야 다윗 왕은 자신이 행한 일이 크나큰
죄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침상이 눈
물로 범벅이 되도록 회개했다고 성경에
서 기록하고 있다.
이와 정반대의 사례가 요아스 왕이다. 요
아스는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에 입학
할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세계 최연소 왕 중
에 한사람이다. 그는 성인이 되면서 언제
나 자신에게 충고하던 여호야다라는 큰
제사장이 소천하자 그의 유언을 무시하
고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의 앞에 스가랴라는 선지자가 나타나 지
적했지만 이를 무시한 요아스 왕은 그에
게 투석형을 내린다.
위의 두 왕의 사례들처럼 ,,그사람 말을 들었어야,,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갔기에 원상복구가
어렵다. 스스로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 장
담하더라도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후회
없이 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남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다.
카테고리 없음
때로는 지적도 받아야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