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물론 역사적 거리나 괴리감으로 인해 왠만한 역사는 잊으려고 애쓰는 것을 본다. 그러니까 너무 먼 과거인 치우천왕과 고조선의 역사까지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역살를 모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왝곡한다는데 문제다. 그중에서는 역사인물들에 대한 평가다. 물론 위인이라고 해도 100%가 존경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누구한테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반면 누구한테는 역적으로 매도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거론할 인물은 세종대왕으로 제목대로 세종대왕은 얀반들한테는 잘했고 백성들한테는 못했다는 설명을 들은 바 있다. 그래서 양반들이 기분이 째져 세종 이도를 긍정적으로 서술했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인 노비제도를 합법화 시킨게 세종이라카는데 사실 노비를 법제화한 사람은 태종이다. 아시다시피 세종 제위초창기에는 선친 태종이 상왕으로 생존해있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의 부몬의 명은 하나님보다 우선시했었다. 그래서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의 노비들이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건 아니었다. 관노들의 경우 사정에 따라 면천시켜주기도 하였다. 정녕 백성들에게만큼은 폭압적이었다면 흉년이 들면 초가삼간을 짓고 살며 반찬의 가짓 수를 줄였다는 기록은 뭔가! 거기에 도성 밖의 백성들이 굶주린다면 관리들을 용서치 않는다고 하셨다는 건 환청이었나. 우리가 다 아는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는 연산군때는 왜 진실로 기록이 되었는가. 연산군 성격에 이를 기록한 관리에 대해서 "야이 10새야 나에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면 눈깔 확 뽑아삐"라고 겁박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연산군 비위를 맞추려던 간신들도 존재했던 게 그 시대였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한 걸 보면 역사는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한다는 선조들의 판단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잖은 교훈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