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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울 아버님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도에 남으로 내려오셨기에
탈북민이라는 표현도 애매할 수있다. 분단초기인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사이에 북에서 남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일컬어 월남자
라고 불렀다. 아버님은 14살 때 학도병에 참전하여 북진대열에 합류해
아군의 동부전성 최대 북진선인 청진까지 진격하셨다.
전쟁중에 남으로 넘어왔으니 피란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원래 아버
님의 고향이 함북 청진으로 북진행렬로 고향땅을 밟았지만 곧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한 이후 고향을 가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 청친에서 약재
상을 하셨고 당시 3층 건물주셨기에 부친의 어린시절은 유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른 살의 나이에 과로사 하면서 가세는 점차 기울어지고 있었다
고 한다.
하지만 슬하에 숙부가 선친을 대신해 돌봐주셨다고 한다. 3층 건물이었기
에 같이 사셨고 먼저 남으로 오셨다고 한다. 서울에서 숙부는 1950년 자유
당의 전신인 한민당 2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셨다. 그런데 이어 발발
한 동란으로 숙ㅂ1ㅜ는 공산군에 체포되어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되였다.
경제를 책임질 가장들을 모두 잃으신 부친은 극심한 생활고의 연속에도
주경야독하여 서울대 건축과에 들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k2iQRkI46X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