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다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인상파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의 말이다. 욕설도 욕설이지만 이보다는 말 끝마다 죽겠다는 말을 덧붙인다는 점이다. 흔히들 "힘들어 죽겠다" "싫어 죽겠다"는 말이다. 물론 이같은 말에 그러한 표현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긴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배불러 죽겠다"던가 "웃겨 죽겠다"와 같이 복에 겨운 단어에 조차도 그러한 표현을 갖다붙인다. 심지어는 좋아 죽겠다는 표현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겉으로 보기엔 행복한 것 같아보이는 부자들도 자살을 한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보면서 웃는다는 이유로 행인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살해 동기는 자신을 비웃는거 같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눈에 거슬린다면 "왜 째려봐 이 10새야"라면서 걍 아구창 한 대 날리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옥수수 몇 개 붕괴되는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그 사람으ㅢ 이가 상한거라면 치과비용 절감했다면 되레 고마워했을지도 모른다.그 사건 외에도 단칸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그 집으로 들어가 일가족을 몰살한 사건은 더 충격이었다. 정작 자신은 불행한데 웃는게 기분나빴다는게 범행 동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그럼에도 웃는것을 보았다면 깨달음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범인은 그러지 않았던 셈이다. 어쩌면 단칸방이었기에 실성해서 웃었을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인과 유대인의 표정을 비됴하기도 했는데 한국인들과 달리 유대인들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띤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한민족과 유대민족의 역사는 수난의 영사라고 한다. 우라나라는 지금까지 총 961회나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수난은 한민족이 겪는 수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그들의 역사가 거짓이었는지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우리의 선조들의 표현은 어땠는지 몰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스스로 삶을 부정하는게 아닐까. 말이 곧 씨가 된다고 했듯이 우리의 조산들이 그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해서 그러한 수난을 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표현이나 감정을 드러낸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장애가 있어 지인들이 나에게는 늘 부정적인 말만 했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의 일이었는데 그 직장이 곧 문을 다게되면서 직원들은 각자의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동료가 여기서 퇴사하면 앞으로 무얼할거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중학교시절부터 꿈이었던 작가의 뜻을 갖고 책을 쓰겠다고 말했더니 그 동료는 나를 한심한 듯이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단원이 그럴 돈이나 있냐고 묻자 나는 그냥 출판사와 협상을 통해 출간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었다. 그러자 그 단원은 그러면 개나 소나 다 책 낸다고 돈 가진 사람들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상기하면 누가 진정한 장애인인지 알만했다. 그럴수록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게 마땅하건만 부정적인 말로 상대방의 도전과 의욕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책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