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거에만 얽메어서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면 아니함 만 못할 수 있다. 6.25를 잊을 순 없으나 그시절로 되돌아 갈수도 없듯이 항상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게 인류의 삶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1990년대에 대한 향수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흔히 복고풍이라 하여 그시절에 유행한 문화를 소환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분명 인류문명은 그시절에 비해서도 상당히 진보해왔음을 체감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고 티스토리도 없었다.
1인당 소득도 당시 5천불에서 1만불 정도(그마저도 이듬해 IMF로 90년대 초반수준까지 내려갔다 2003년 경에야 1만불대 회복)였지만 지금은 3만5천불이다. 마치 파이는 커졌지만 맛은 예전만 못하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시대의 음악은 물론 음식과 문화에 있어서 다양함을 갖추기 시작한 무렵이기도 하다. 더구나 문화적인 한계가 있었던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시대가 시작되면서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던 무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990년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련다.
가요ㅡ현진영의 토끼춤, 심신의 쌍권총춤,철이와 미애의 때밀이춤, 서태지와 아이들의 회오리춤, 잼의 멈추지않는 춤, 노이즈의 스릴러 춤, 듀스의 꽃게춤, 박진영의 파도춤, 디제이 덕의 관광버스 춤, 잉크의 굼뱅이 춤, 룰라의 엉덩이 춤, 클론의 꿩다리 잡아라 춤, 박미경의 이유같지않은 춤, 에쵸티의 카레이서 춤, 잭스키스의 기사도 춤, 지누션의 와이퍼 춤, 임종환의 어깨춤(임서원의 어깨춤이 아니라 그냥 걸었어를 부른 레게가수), 김건모의 왓다리 갓다리 춤, 홍서범, 신신애의 막춤, 김흥국의 개다리 춤, 이상우의 피노키오 춤, 태진아의 팬들러 춤, 코요테의 말춤, 이정현의 테크노 춤.
드라마ㅡ무풍지대, 달빛가족, 울밑에선 봉선화, 제2공화국(이상은 80년대 말에 방영되어 90년대 초까지 함),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전원일기, 대원군, 어둔하늘 어둔새, 인간의 땅, 전쟁과 사랑, 여명의 눈동자, 사랑이 뭐길래, 야망의 세월, 먼동, 엄마의 바다, 걸어서 하늘까지, 일월, 밀회, 한명회, 역사는 흐른다, 마지막 승부, 질투, 조광조, 서궁, 당신이 그리워질때, 남자는 괴로워, 한쪽눈을 감아요, 미스테리 멜로극장, 자반고등어, 방울이, 첫사랑, 무지개 아이들, 태극아이505, 마주보며 사랑하며, 아무도 못말려, 산, 순풍산부인과.
에니매이션 ㅡ 80일간의 세계일주(동물케릭터), 은비까비, 무도사 배추도사, 초롱이의 인물한국사, 사랑의 학교, 날아라 슈퍼보드, 마법사의 아들 코리, 쌍동이 줄루줄리, 꾸러기 로보컴, 시간탐험대, 다크윙 덕, 러쉬맨, 울트라맨, 고바리안, 천년왕국, 팽킹 라이킹, 꽃 천사 매리벨, 뾰로롱 꼬마마녀, 웨딩피치, 다의 요정 세일러문,나란히 나란히, 별난가족 별난학교, 5학년3반 청개구리, 검정고무신.
그 외에도 각종 예능프로가 신설되던 시기였다. 그중에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이는 80년대초 코미디프로와 동일한 이름으로 고 이주일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프로가 있었다. 나는 예능프로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보통사람 보통무대'라는 프로에 참여한 바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론 90년대는 그리 추억할만 한 년대가 아니었다고 본다. 당시 나는 가정형편상 학교를 중퇴할 수 밖에 없었고 내 아우도 평생 꿈꿔왔던 야구선수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라서 사회전반에 걸쳐서 그렇게 태평한 시대는 아니었다. 어느시대에나 빈부격차는 존재했었던 것이다. 그러면 199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새해벽두부터 발생한 주택가 연쇄방화사건은 당시 국민들을 공포의 구렁텅이로 몰던 채 출발한 90년대였다. 그러다보니 90년대는 시작부터 재수 옴붙는 일만 가득할 것으로 ㅇㅖ감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우선 부끄러웠던 일(사건사고 포함)부터 열거해본다.
주요사건 ㅡ 지존파, 박한상, 김성복의 부모살해, 이형호어린이 유괴, 오태환 일당의 일갖복 암매장, 부여, 강릉 무장공비침투, 휴전선일대 포격전, 황장엽 망명, 대구 지하철공사장 폭발, 구포 열차탈선, 아현동 주유소 폭발, 서해 훼리호 침몰, 아시아나 항공기 목포추락, 대한항공기 괌 추락, 성수대교, 삼풍백화점붕괴, IMF, 서울 38도 폭염.
자연재해 ㅡ 태풍 글레디스, 제니스, 올가, 1990년, 1995년, 1996년, 1998년 수해.
자랑스런 일 ㅡ 남북기본합의, 단일팀 구성, UN, OECD가입, 수출 1000억불, 1인당 소득 1만불 달성,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금강산관광 시작, 금융실맹제(아님말구), 박찬호, 박세리의 선전, 월드컵 유치.
개게한 글 목록만 봐도 자랑스럽던 일보다 부끄럽던 일이 더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이중에 무엇보다도 큰 타격은 IMF였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6.25이래 최대 난국이라 불릴 정도로 그 후유증도 상당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는 자살율 1위와 가파른 저출산으로 인구구조마저 바뀌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당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과오를 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 만족해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한 무한긍정이었던 것이다. 이를 상기하면 미련한 긍정보다는 지혜로운 부정이 우리에게 있었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 나이 대충먹은 글쟁이의 판단이다. 지나간 시간은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대비다. 그러므로 그때 그시절의 심정대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