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크레용 팝의 노래제목으로 지어보았다. 당연히 크리스마스는 매리 크리스마스다. 물론 매일이 크리스마스였으면 좋을 것 같다. 매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라고도 하지않은가. 그런데 크리스마스라고해서 그때만 유일하게 온누리가 평안한것만도 아니었다. 노랫말처럼 꾸리꾸리했던 크리스마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눈이 아닌 비가 온 날도 있었다. 춥지 않고 더운날도 있다. 호주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여름이라 해변가에서 산타가등장하는데 그러면 산타가 아닌 바다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망고가 몽고에서 나는 과일이 아니듯이 산타가 산을 타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것이다. 좌우지간 크리스마스는 산타할아버지가 잠결에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가시면 그 기대감에 그날이 기다려지곤 했다. 크리스마스선물을 받기 시작한건 유치원때부터였다. 당시는 머리맡에 선물을 놓은 방식이 아니라 산타가 직접 유치원을 방문해 차례로 원생들에게 선물을 주는 방식이었다. 원생 한명씩 호명하면 산타앞에 대령해서 선물을 받는식이었는데 그때 나는 플라스틱 트럭을 받았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머리맡에 선물을 놓는방식이 시작되었다. 1학년때는 바나나킥, 나하나 도롭포스, 연양갱, 바바 초코바 등 주로 제과류로 받았었다. 2학년때는 연발 루가총(조립식 완구), 미니카, 3학년때는 티티파스와 스케치북에 만화책을 추가로 받았고 4학년때는 부츠, 연필세트를 받았다. 5학년때는 머리맡에서 선물받는게 마지막이었고 당시 어린이잡지 보물섬을 받았다. 6학년때는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선물을 사오신걸로 기억난다. 그밖에 크리스마스파티도 개최하여 당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어보았다. 또 새벽송 제도가 있어 그날만큼은 통금을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은 통금이 사라졌어도 좀처럼 새벽송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크레파스를 선물로 받던 날 잠결에 고한밤 거룩한밤이라는 노랫소리가 났었는데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암튼 나는 이제 52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의 기분과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잇음을 느낀다. 2년 전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직격탄을 맞았으나 그 전부터 웬즈이 꾸리꾸리한 서ㅕㅇ탄절이 된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IMF때무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도 다소 꾸리꾸리한 분위기였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는 12.12와 계엄령 직후에 맞이한 크리스마스였지만 어린 내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리 없었기에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 10.26에 이어 12.12, 5.17로 이어진 정정불안상태가 지속되고 오일쇼크로 인한 불경기였다지만 당시 그러한 체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 경기도 안좋아 좀처럼 그러한 기분이 들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전쟁도 멈추었다는 전례를 볼 때 이제라도 그시절을 상기해서 전쟁을 중단하는 바램은 세계의 소원일 것이다.